책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 남자가 있었다.

말 그대로 그는 손에 쥘 수 있는 형태의 '책'에 적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는 사람이었다. 흰 종이에 적혀진 검은 활자가 그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든 그는 여과없이 그 내용을 받아들였다. 그는 책을 사랑했고, 맹신했다.

달의 아들이 있었다.

책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 남자--아마도 그의 이름을 줄여 '책남자'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불러도 괜찮을 듯 한--를 만나게 된 달의 아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가 멍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안 되게 많은 공리들을 가진 그와 대화하는 것은 매우 괴로웠다. 책남자의 무식하게 방대한 공리계는 매우 높은 확률로 자기모순적일 테지만 책이 자신의 사고를 대신해 주는 단계에 이른 책남자의 두뇌는 그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잘 돌아가지 않았다. 슬픈 일이었다.

책남자는 말이 많았다.

그는 분명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도 많은 활자를 눈으로 보고, 인식하고, 뇌에 쑤셔넣었을 것이다. 애초에 그의 두뇌는 용적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위에서 책 한 권을 쑤셔넣으면 아래로 다른 책 한 권이 나와야 했다. 책남자에게 있어서 두뇌의 아래 출구는 발성기관이었던 모양이다.

비참한 삶을 사는 책남자였지만 달의 아들은 그를 동정하기는커녕 매우 기분 나빠했다.

달의 아들은 책남자를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달의 아들은 책남자의 스무 번째 생일에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그리고 며칠 후 크리스마스에 다른 책 한 권을 선물했다. 달의 아들이 선물해 준 두 권의 책을 완전히 소화한 책남자는 죽어버렸다. 달의 아들이 매개가 되어 모순적인 두 책의 내용이 연결되자 책남자의 작은 두뇌는 최초로 모순을 느꼈고 그 연쇄작용으로 그의 공리계가 붕괴된 것이다. 곧 그의 세계, 그의 정신도 무너졌다.

달의 아들은 보름달을 싫어했다.

보름달을 싫어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보름달'이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보름달(full moon)은 마치 바보 달(fool moon)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 누가 자신의 부모를 욕하길 원하겠는가.

보름달이라는 단어가 있는 지구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달의 아들은 로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달의 아들은 지구에 살고 있는데 달은 매년 3.8 cm씩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로켓은 금방 완성했으나 안타깝게도 달의 아들은 그다지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 달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만의 연료를 구할 수 있었다.

달의 아들은 지구를 떠났다.

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달은 그가 여행하는 동안 지구에서 조금 더 멀어졌기 때문에 달의 아들은 그의 로켓을 타고 영원히 우주를 떠돌게 되었다.

작은 우주선 안에 갇힌 채 죽지도 못하는 달의 아들은 자신이 죽인 책의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믿는 남자를 생각했다.
«1 ... 2345678910 ...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