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나는 가방이 없다.

등에 메는 가방이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사서 쭉 써오던 가방인데 지퍼가 고장 나서 AS 보냈다.

검은색 가방이었다.

두 주 후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 몇 주가 지났는지 잘 모르겠다. 기숙사 택배사무소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택배가 오면 아저씨가 문자를 보내는데 문자가 증발해버렸거나 단순히 아저씨가 문자를 보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택배사무소에 가 보지 않았다. 귀찮아서라기보다는 그냥 가는 것을 잊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도 내 가방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는 가방이 없다. 가방이 없는 몇 주일을 살아본 결과 가방은 습관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습관으로 이루어진 삶을 산다. 늘 하듯 잠에서 깨어 화장실로 기어가 세수를 한다-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간다. 전부 다 습관이다. 습관은 유용하다. 그들보다 더 보잘것없는 것들을 하는 데 사용되는 대뇌를 쉬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습관은 충분한 사고의 결실이 아니라 때로는 정말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나의 가방이 그런 예였다.

가방이 있으면 무언가를 넣고 싶어진다. 나는 가방에- 수업에 들어가 책상 위에 올려놓기만 하고 펼쳐보지는 않을 교과서를/ 책상 위의 교과서를 몰라 하고 낙서할, 줄 없는 연습장을/ 일 년의 365일을 누워지내는, 필통 안 다양한 색의 펜들을 넣었다. 때로는 우산도 넣었다. 우산을 가지고 나가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쓸데없는 것들을 짊어지고 다녔던 것이다. 손에 드는 가방이었으면 나았을지 모른다. 내 어깨는 무거움을 몰라 필요없는 노동을 하고도 얌전했다. 그것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13년 정도 계속된 것이다. 가방을 메지 않았더라면 내 키가 더 컸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가방이 없는 나는 수업에 빈손으로 들어간다. 내 하루에 필요한 것들은 두 주머니면 충분했다. 왼쪽 주머니에는 지갑을, 오른쪽 주머니에는 핸드폰을. 수업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잊으면 된다. 하지만 밥을 먹을 때는 지갑이 필요하고, 심심함을 달래려면 핸드폰이 필요하다.

가방이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가방을 다시 멘 부자유가 될 수도 있겠고, 가방을 내 기숙사 방 한구석에 썩힐 수도 있다. 가방이 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가방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6 Responses to “가방”

  1. says:

    아낰ㅋㅋㅋㅋ 가방이라니 그건 고등학교때 이미 멸종한 거자낰ㅋㅋ

  2. 기운 says:

    가방 오늘 돌아옴. 절묘하군… 그리구 맞아 고등학교 때도 가방 많이 안 썼어. ㅋㅋ

  3. 기운 says:

    결론: 부자유가 됨.

  4. 기운 says:

    ㅋㅋ 난 아직도 이 가방에 메인 부자유… 가방을 새로 사고 싶은데 예쁜 가방이 없다.

  5. 안녕~! says:

    지나가다우연히들렀는데…
    당신! 진짜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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