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의 입자설
2006/12/29 13:07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가? 현대인이라면 누구도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이다. 사는 동안에 서로 수많은 관계를 맺게 되고, 다양한 집단에 소속된다. 나는 아직 충분한 사회적 경험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와 같은 나이 또래의 사회를 보더라도 내가 TV나 부모님, 주변의 성인들을 통해 배운 어른들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띄고 있다.
모두가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든 생각인데, 사회의 구성원들 중 일부가 소속되어 더욱 더 특별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작은 모임의 경우엔 한 둘의 사람들이 바람잡이 같은 역할을 해서 그 집단을 더욱 더 강한 소속감으로 묶이게 하는 것 같다. 집단의 유지에 있어서는 필요한 작업이지만 많은 경우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인 경우는 적지 않겠다. 나의 사회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일종의 거짓과 불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로지스톤(phlogiston)을 아는가? 고대인들이 '불'이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입자다. 보통 불타고 난 물체는 질량이 감소하는데, 이것을 플로지스톤이 불에 의해서 제거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물론 철을 비롯한 금속들이 산화되어 질량이 증가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고 결국은 음의 질량을 가진 플로지스톤을 도입하는 등 가면 갈수록 삼천포로 빠진 설이다. 플로지스톤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자명하다. 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로지스톤이 가지는 의미가 없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얕은 사고로 정수를 깨닫는 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고 초기의 간단한 결과들에는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공했다. 오늘날 흔히들 말하는 과학적 방법론은 가설연역법으로 설의 부정은 가능하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설명을 향해 가는 일직선의 길이 아니다. 사람이 몸의 균형을 맞출 때에는 기본적으로 기울어진 방향의 반대로 무게를 싣는 피드백을 이용하는데 과학적 방법론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더 나은 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 플로지스톤을 비롯한 설들이다.
그러면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소속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절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어 할 내용이다. 당신이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적어넣은 문자를 읽을 수 있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어이없고 나도 전혀 믿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소속입자라는 것을 가정하겠다. 말하자면 소속감의 플로지스톤이라고 하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의 광자, 강력의 글루온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입자다. 이 입자는 모든 지적 생명체에 위치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두뇌 시상하부에 있는 한 내분비계에서 분비된다(의학이나 생물학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쓴 글이니 일단은 그냥 납득해 두도록).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호르몬과 같이 한 사람 내에 존재하나 페로몬과 같이 일부는 사람의 몸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위의 그림에서 중앙에 선 사람은 한 집단의 소속주체이다. 소속주체란 한 집단의 구심력이 집중된,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바람잡이'다.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 예를 들면 해당하는 집단에 대한 강한 애착이 이런 사람들이 탄생할 조건을 마련한다. 일단 바람잡이가 생겨나고 나면 이 사람은 주변에 자신의 소속입자를 뿌린다. 그러면 이 입자는 마치 기체가 확산되듯 주변의 사람들에게 닿는다.
위 그림은 최초의 소속입자 전파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1과 2는 다른 사람이고 애초에 이 둘의 몸 속에 존재하는 소속입자는 생판 다르다. 하지만 1은 지금 소속주체가 되어있는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속입자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상황이 조금 더 진전되면 위와 같이 2는 1과 같은 소속입자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치 1의 중계기와 비슷한 것으로 작용해 3에게 같은 영향을 미친다. 이 작용이 반복되면 1,2,3을 포함한 집단이 생겨나게 된다.
소속입자의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발현되고, 더 특별한 경우에 한 개체를 소속주체로 하여 한 집단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둘째로, 같은 소속입자를 가진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끼며 서로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겉으로 발현되는 소속입자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다. 셋째로, 특정 환경에서만 발현되며 전파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가진 생명체는 이 발현(전달)을 무의식 중에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
어떤가? 이 설이 미쳤다고 생각되는가? 하지만 이 설은 물론 특정한 경우에 한해서기는 하지만 한 집단이 생겨나는 생성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개인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가정을 추가하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소속입자의 전달력이 강한 사람이라는 설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설을 만들어낸 난 과학도로써 '통상적인' 과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거나 하지 않고, 영구기관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각의 3등분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소속입자의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상한가?
이 설은 과학적인 반박이 가능하다. 현대인들이 이룩해 놓은 현대 문명은 지금 내가 이런 설을 제시했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할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 수천 년에 걸쳐서 쌓아올려진 상아탑과도 같이 웅장하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상식의 과신이다. 앞선 시대나 동시대의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바탕 위에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 귀납적인 지식을 쌓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자연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우리가 과거에 그리고 아마 미래에도 인공적으로는 닿을 수 없을 귀납추리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활용한다. 우리의 상식은 귀납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인지 위와 같은 설을 보았을 때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해버리고는 한다.
위의 설은 황당하고 재미도 없다.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생각들이 나오는 것을 처음부터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나의 글은 쓰는 도중에 완성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인간의 소속감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따라서 두서없음을 이해하기를 바라며, 이 설로 그 제안자를 비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소속감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든 생각인데, 사회의 구성원들 중 일부가 소속되어 더욱 더 특별한 소속감을 가지게 되는 작은 모임의 경우엔 한 둘의 사람들이 바람잡이 같은 역할을 해서 그 집단을 더욱 더 강한 소속감으로 묶이게 하는 것 같다. 집단의 유지에 있어서는 필요한 작업이지만 많은 경우 소속되지 않은 사람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인 경우는 적지 않겠다. 나의 사회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일종의 거짓과 불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플로지스톤(phlogiston)을 아는가? 고대인들이 '불'이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입자다. 보통 불타고 난 물체는 질량이 감소하는데, 이것을 플로지스톤이 불에 의해서 제거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물론 철을 비롯한 금속들이 산화되어 질량이 증가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했고 결국은 음의 질량을 가진 플로지스톤을 도입하는 등 가면 갈수록 삼천포로 빠진 설이다. 플로지스톤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자명하다. 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로지스톤이 가지는 의미가 없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얕은 사고로 정수를 깨닫는 상태에 도달할 수 없는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였고 초기의 간단한 결과들에는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공했다. 오늘날 흔히들 말하는 과학적 방법론은 가설연역법으로 설의 부정은 가능하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설명을 향해 가는 일직선의 길이 아니다. 사람이 몸의 균형을 맞출 때에는 기본적으로 기울어진 방향의 반대로 무게를 싣는 피드백을 이용하는데 과학적 방법론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더 나은 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 플로지스톤을 비롯한 설들이다.
그러면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서, 소속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것은 절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정말 황당하고 어이없어 할 내용이다. 당신이 유치원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적어넣은 문자를 읽을 수 있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말이다. 실제로 어이없고 나도 전혀 믿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소속입자라는 것을 가정하겠다. 말하자면 소속감의 플로지스톤이라고 하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의 광자, 강력의 글루온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입자다. 이 입자는 모든 지적 생명체에 위치한다. 인간의 경우에는 두뇌 시상하부에 있는 한 내분비계에서 분비된다(의학이나 생물학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쓴 글이니 일단은 그냥 납득해 두도록).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호르몬과 같이 한 사람 내에 존재하나 페로몬과 같이 일부는 사람의 몸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소속주체
위의 그림에서 중앙에 선 사람은 한 집단의 소속주체이다. 소속주체란 한 집단의 구심력이 집중된,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바람잡이'다. 선천적으로나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 예를 들면 해당하는 집단에 대한 강한 애착이 이런 사람들이 탄생할 조건을 마련한다. 일단 바람잡이가 생겨나고 나면 이 사람은 주변에 자신의 소속입자를 뿌린다. 그러면 이 입자는 마치 기체가 확산되듯 주변의 사람들에게 닿는다.
소속입자의 최초 전파
위 그림은 최초의 소속입자 전파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1과 2는 다른 사람이고 애초에 이 둘의 몸 속에 존재하는 소속입자는 생판 다르다. 하지만 1은 지금 소속주체가 되어있는 상태이고 이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속입자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계속되는 소속입자의 전파
상황이 조금 더 진전되면 위와 같이 2는 1과 같은 소속입자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치 1의 중계기와 비슷한 것으로 작용해 3에게 같은 영향을 미친다. 이 작용이 반복되면 1,2,3을 포함한 집단이 생겨나게 된다.
소속입자의 특징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발현되고, 더 특별한 경우에 한 개체를 소속주체로 하여 한 집단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다. 둘째로, 같은 소속입자를 가진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끼며 서로 친숙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겉으로 발현되는 소속입자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다. 셋째로, 특정 환경에서만 발현되며 전파를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가진 생명체는 이 발현(전달)을 무의식 중에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
어떤가? 이 설이 미쳤다고 생각되는가? 하지만 이 설은 물론 특정한 경우에 한해서기는 하지만 한 집단이 생겨나는 생성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개인별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가정을 추가하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소속입자의 전달력이 강한 사람이라는 설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설을 만들어낸 난 과학도로써 '통상적인' 과학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거나 하지 않고, 영구기관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각의 3등분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소속입자의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상한가?
이 설은 과학적인 반박이 가능하다. 현대인들이 이룩해 놓은 현대 문명은 지금 내가 이런 설을 제시했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할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 수천 년에 걸쳐서 쌓아올려진 상아탑과도 같이 웅장하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상식의 과신이다. 앞선 시대나 동시대의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바탕 위에서 우리는 경험을 통해 귀납적인 지식을 쌓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자연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우리가 과거에 그리고 아마 미래에도 인공적으로는 닿을 수 없을 귀납추리의 정점에 위치해 있다. 경험으로부터 배우고 활용한다. 우리의 상식은 귀납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래서인지 위와 같은 설을 보았을 때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해버리고는 한다.
위의 설은 황당하고 재미도 없다.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생각들이 나오는 것을 처음부터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나의 글은 쓰는 도중에 완성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인간의 소속감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으나 어느새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따라서 두서없음을 이해하기를 바라며, 이 설로 그 제안자를 비판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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