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이 글은 릴레이를 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글입니다.

이 소설은 현재 구상 중...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귀가잖아요^^
잊었다고 생각할 까봐 올려둡니다. 오늘 조금 있다 오후에 쓰지요.

어쨌든 여기서 이 길었던 릴레이를 그만 끝낼까 하는데 어떨지 의견을 듣고 싶다. 탓치가 남아있지만 늦게 들어왔으니까 마지막 부분을 쓰게 되면 부담이 있을 것도 같고 다음 릴레이를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2006/11/25 03:24)



20. The Ultimate Story

1) 이 사건과 관련된 한 탐정의 독백으로 쓰인 기록

나의 이름은 나서호. 그래, 조금 이상한 이름이란 소리는 많이 들어봤다. 나이는 25세. 젊지만 난 충분히 유능한 탐정이지. 내 친구 영우와는 다른 진짜 탐정. 한국에서 태어났고, 아주 어릴 때 이곳 영국으로 유학 와서 케임브리지를 18살에 졸업한 수재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빨리 인생을 살아도 사회에 나와 보면 할 일이 없더라고. 그래서 난 백수 생활이나 하다가 돈벌이를 할까 하고 탐정일을 하게 된 거지.

영우랑 만난 건 언제더라? 내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기 얼마 전. 그 녀석은 갓 영국에 도착한 유학생이었고 키도 별로 크지 않은 게 눈에 띄지는 않았어. 게다가 숫기는 얼마나 없는지 밥도 혼자 먹고 참 불쌍하더라고. 하지만 한국인이니까. 어설픈 민족주의가 발동했고 나도 한국 소식 좀 듣고 싶은 마음에 말을 걸어 보았어. 짜식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그 날부터 나한테 붙어서 항상 따라다니더라고. 바보 같은 놈이었지만, 공부는 잘 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 졸업하고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백수 생활이나 하고 시간을 때웠는데, 어느 날 그 녀석한테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고. 그러면서 연신 즐거워하는 말투인 게 무슨 일이 있나 했지. 아니나 다를까, 그런 천하의 바보 같은 녀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는지 애인이 생겼다고 하더라. 이름은 김지영이라면서 영국에서 외로웠는데 지영이 덕분에 그래도 좀 덜 외롭게 되었다면서 좋아했어.

“야, 서호 넌 졸업했는데 애인도 안 만들고 집에만 쳐 박혀서 하는 게 뭐냐? 머리 좀 좋으면 어디에 쓴다고. 나 정말 부럽지 않냐? 지영이가 얼마나 착하고 또 예쁜데? 부럽지?”

짜증나서 전화를 끊어버렸어.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듣는 ‘영우로써의’ 녀석의 목소리인 줄은 생각도 못하고. 그리고는 당장 일에 착수했다. 무슨 일이냐고? 당연히 백수 생활을 그만 둘 일이지. 우리 삼촌이 그런 쪽 일을 좀 하고 있어서 나도 사설탐정이나 좀 해 볼까 하고 일을 시작한 거야. 뭐 찾는 사람은 많이 없어도 명함을 내밀 정도의 일은 되니까 말이야. 게다가 나처럼 수재는 크게 한 탕 하면 인생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사례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나한테 그렇게 적절한 직업은 없어 보였지. 영우 그놈도 탐정이란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정도는 갖고 있는 것 같던데 나중에 알려주면서 어깨에 힘 좀 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좀 있었어.

그런데 그날 저녁에 병원에서 전화가 오더라고. 영우가 교통사고가 났다고. 그것도 매우 심하게 다친 모양이던데 의식도 없는 듯 영우 핸드폰에서 내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어. 걔네 부모님도 돌아가신지 꽤 되었고. 신원 조회 정도는 해본 모양이더라. 김지영이라는 여자에게도 전화를 해 봤다고 하던데 아직 병원에 도착하진 않았다고 했어. 그래서 어쩌겠어. 당장에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병원으로 달려갔지.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고. 심하게 다쳤는지 온 몸에 붕대가 감겨있고 의식도 없었어. 일단 간단하게 내가 보호자로 이름을 적어 놓았고 김지영이 도착하는 걸 확인한 뒤에 영우가 입원해 있는 방을 나섰어. 막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이상한 인상의 남자가 내 곁을 스쳐서 지나가는 거야. 그 때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잘 생각해 보니 분명히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이름은 벤 라이스, 매드 사이언티스트였지. 당황했어. 그런 사람이 무슨 볼일이 있다고 영우의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는지. 물론 독방이 아니었으니 내가 그 때 그 사람이 영우에게 볼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거였겠지. 하지만 벤 라이스는 영우에게 볼일이 있었다. 아니 영우뿐만이 아니라 지영에게도.

벤 라이스는 전에 TV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쥐의 기억을 다른 쥐한테 이식한다고 하던데, 신기하기는 하더라고. 쥐한테 매우 복잡한 미로를 통과하는 방법을 어렵게 가르친 다음에 그가 개발했다는 이상한 기계를 이용해서 다른 쥐한테 기억을 복사한다는 거야. 물론 TV에서 그 실험은 성공했지. 당시에는 그냥 마술사의 마술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어. A쥐의 기억을 B쥐에게 복사하는 척 하면서 슬쩍 A쥐와 B쥐를 바꿔치기 하는 것 말이야.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아무튼 까맣게 잊고 지냈지. 영우는 애초에 나의 유일한 친구도 아니었고, 탐정일도 좀 바빠지기 시작했으니까. 이 유능한 두뇌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더라고. 그런데 어느 날 공원에서 갑자기 내가 잘 아는 얼굴을 발견했어. 영우였지.

(후략)



2) The Ultimate Story

대진은 한 침대 위에서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아까랑 똑같은 상황이군. 정신을 잃고 또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리다니…….’

역시나 아까와 같은 하얀 방이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은 그의 옆에 또 다른 침대가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그 침대 위에서는 변태 같은 얼굴의 한 남자가 오만상을 다 써가며 정신을 차려가는 중이었다. 그는 벤 라이스였다. 그보다 조금 일찍 정신을 잃고 ‘영우’에 의해 이 방으로 끌려온 남자. 그리고 대진과 벤 라이스가 누워있는 두 침대 사이에 놓인 작은 의자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영우’가 아니었다. ‘지영’도 아니었다. 말쑥한 외모에 비교적 큰 키. 정장을 입고 있는 그는 매우 사무적인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이었다. 대진과 벤을 응시하는 그의 또렷한 눈동자는 마치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누구냐, 넌. 정말 오늘 하루는 정신이 없구만 그래!”

당황하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벤과는 달리 대진은 침착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날카로운 눈매의 사람을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였다.

“서호야…….”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는 대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영우’.”

‘서호’의 뒤에는 영우가 서 있었다. 하지만 서호가 말한 영우는 그가 아니었다. 그는 침대에서 막 정신을 차린 대진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명백해졌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영국에서 영우가 심하게 다치게 된 교통사고였다. 벤 라이스는 심한 사고로 전신 불수가 된 영우와 지영을 만났고 영우에게 기억을 이동시키는 시술을 했다. 원래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은 기억에서 비롯된 것인지라 기억 시술은 그 사람의 자아 그 자체를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벤의 기억 시술은 불완전한 것이라 기억 시술을 한 사람의 기억은 차츰 붕괴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억 시술을 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우’의 정신은 육체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섯 번째의 기억 시술은 행해졌고 이제 ‘영우’의 정신은 대진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시간의 경과 때문인지 기억 시술을 하는 사이사이 많은 기억들이 손상되었고 대진은 완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지영’에게 일어난 일도 동일하다. 벤 라이스는 가능하면 많은 수의 실험체를 원했고 지영에게 기억 이식을 제안했다. 연인의 기억이 없어지는 슬픔을 나누고 싶었던 지영은 허락했고 그로 인해서 지영의 정신도 다섯 번의 이동을 거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커스단에서 대진과 처음 만난 김지영.

“모든 것이 끝났다. 벤 라이스. 나는 너를 잘 알고 있지. 네가 영우와 지영에게 ‘실험’한 기억 이식 시술이라는 것도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서호는 당당했다. 그는 이미 오랜 기간 벤 라이스를 추적했으며 영우와 지영에 대해서도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말도 안 돼. 네까짓 게 뭘 안다고?”

고통에 가득 찬 얼굴로 벤 라이스가 외쳤다. 그 순간 다른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자코 서호의 뒤에 서 있던 ‘영우’다.

“아버지. 날 기억하나?”

“!!”

“벤 라이스. 너는 나의 아버지다. 네가 기억 시술이라는 것을 창안하고 그것을 행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동시에 기억이 시술되는 대상의 육체를 소유하던 정신은 소멸되었지만. 나에게 있어서 너는 창조주이며 아버지다.”

“이런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헛소리가 아니다, 너는 교통사고로 심하게 부상당한 영우의 육체가 그대로 마비되어서 식물인간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날 버려두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서호가 나를 구했다. 나의 육체는 대부분이 기계로 대치되었지. 사이보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모순을 종식시키기 위해 서호의 팔이 되어 주었다.”

“무슨 모순!! 이 계획에 모순 따위는 없다! 물론 나는 기억을 이식시켜 모체에서 탄생하게 된 새로운 자아를 죽일 정도로 무자비하지는 않아. 하지만 그들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아. 어렴풋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는다고!! 그들은 새로운 사람이야. 너도 새로운 삶을 찾았어야 해! 이 모든 일에 끼어들 권리는 없다고! 네가 이 사건과 관련된 유일한 것은 육체뿐이다!”

“벤 라이스. 나는 당신의 실험에 의해 태어났다. 그래서 난 이것을 종식시킬 권리도 있어. 말했듯이 나는 서호의 팔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서호는 나의 두뇌가 되어 주었어. 서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나의 육체에 깃들었던 최초의 영혼과 친구였던 그라면 믿을 수가 있지. 당신의 실험은 이미 끝나가고 있어. 너는 붙잡혔고, 영우와 지영도 우리가 손에 넣었다. 남은 것은 이제 나와 같이 당신에 의해 탄생한 슬픈 영혼들을 다시 되돌리는 것이다.”

영우의 말을 듣고 뭐라고 외치려던 벤 라이스는 서호의 말에 가로막혔다.

“지영 씨, 들어오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리고 지영이 들어왔다. 서호와 ‘영우’가 편하게 부르던 명칭으로 부르자면 K5. 지영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아마도 한기 때문이리라. 방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사람은 할아범의 동생이었다. 그의 손에는 영우의 ‘봉’이 들려 있었다. 그도 꽤나 힘이 센 모양인지 그 무거워 보이는 봉을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벤 라이스는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옆의 대진도 마찬가지였다.

“하… 하… 할아범??”

분명히 할아범은 죽었다. 저기 서호의 뒤에 서 있는 영우라는 남자의 봉에 의해. 그런데 그 봉을 들고 다시 당당히 들어오는 저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유령이라도 되는 것인가? 대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영이 설명을 하기 위해 나섰다.

“아니야. 이 분은 할아범이 아니라 그 분의 동…….”

“지영, 틀렸다. 나는 할아범의 동생이 아니야. 할아범 그 자신이지.”

방금까지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사람이 할아범의 동생이라고 믿던 지영은 놀랐다. 할아범은 그런 지영의 태도를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나는 서호의 첩보원…이다.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아무튼 대진, 아니 영우와 지영, 너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서커스단에 잠입한 거다. 한참 동안 지켜보았어. 어떻게 하면 영우와 너에게 사실을 알리고 이 모든 일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

서호가 끼어들었다.

“아니, 여기서는 제가 이야기를 하지요. 사실 모두 알겠지만 여기 제 뒤에 서 있는 영우라는 남자는 당신들의 일에 두 번 관여를 합니다. 한번은 M 그룹의 회사 회장을 죽일 때, 그리고 다른 한번은 할아범을 죽일 때죠. 물론 이 때 할아범은 진짜 죽은 게 아니고요. M 회사의 회장이 영우의 자아가 한번 있었던 육체라는 것을 알고 나서 그를 설득하러 직접 갔었습니다. 당신은 인위적인 자아이니, 사라져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하지만 말을 듣지 않더군요. 물론 그는 자신이 벤에 의해서 ‘창조된’ 자아임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만나보니 다른 자아들도 모두 다 그걸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를 죽일 계획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 있는 지영 씨, 당신이 여기 있는 영우에게 연락을 해오더군요. 아마 많이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건 잘못된 기억입니다. 영우와의 사랑, 그리고 영우의 유학 건 말입니다. 벤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 그 기억 시술 정말 엉망이더라고요. 기억을 이식시키기는 하는 것 같은데 쓸데없는 이상한 기억도 많이 만들어 내는 건 왭니까?”

벤이 이를 악물었다. 이마에는 핏대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만 잠자코 이야기를 듣는 수밖에.

“어쨌든 일이 편하게 되어서 회장은 그렇게 죽였습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또 그 럭셔리한 여자 L2가 발견되었어요. 그녀는 어느 조직의 보스였습니다. 그녀에게 접촉하기 위해서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했는데 영우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L2에게도 지영의 자아가 한 번 있었으니까 영우를 알아볼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할아범을 한 번 더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사실은 돈과 인력이 좀 달리거든요.”

“그래서 할아범을 죽인 척 한 건가.”

대진이 말했다.

“그래. 할아범을 빼낼 기회도 되었고 너에게 그 봉을 줄 수도 있었으니까.”

서호가 대답했다.

“그 봉은 뭐죠?”

지영이 물었다. 대진도 그 봉이 뭔지 정말로 궁금했다. 지영은 대진보다는 조금 더 잘 알고 있는 편에 속했다. 방금 할아범이 그녀에게 그 봉을 ‘사용’하고 난 뒤로는 영국에서 영우와 사랑했던 자신의 기억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봉은 말이죠.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겁니다, 지영 씨. 하나는 지영 씨에게 사용한 것처럼 기억을 보조해 주는 역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벤의 시술에 의해 만들어진 자아를 소멸시키는 역할. 벤 씨는 그런 편리한 것을 만들고는 쓰지도 않았더군요.”

“제기랄! 나는 그 봉을 나중에 쓰려고 한 것뿐이야. 더군다나 그것이 내가 만든 폐기물들을 없애는 데 쓰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벤이 외쳤다. 서호는 그를 무시했다.

“아무튼 그렇게 된 거고요. L2 지영양의 경우엔 조금 특이했는데, 그녀의 기억 시술이 좀 이상하게 됐더라고요.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했는데도 약간의 기억이 남아있었어요. 물론 벤 씨의 책임이죠. 어쨌든 벤 씨가 아까 그녀를 마취하는 바람에 역시 생포되었고요.”

대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서호가 말을 그만하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일의 결론은 이건가? 나와 지영은 지금 여기에 있고, 우리 때문에 수많은 그 ‘폐기물’ 자아들은 죽었다는 거야?”

“슬프게도 사실이다. 그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어. 육체는 그대로면서 자아가 바뀌었으니 사회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그 M 기업의 회장만 봐도 그래. 그 회사는 그냥 평범한 장난감 총기류 회사에서 막 무기 회사로 바뀌어 가고 있었어. 바뀐 회장의 자아는 전쟁광이었거든! 히틀러처럼 말이야.”

고개를 떨어뜨리는 대진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서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안타깝지만 이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나 버렸고, 어쩔 수 없어.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있지만 과거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거든. 지금의 너의 육체와 지영의 육체는 남매지간이다. 그게 네가 옛 주소를 찾았을 때 그 집에 지영이 있었던 것을 설명해주겠지. 하지만 너희들의 자아, 영혼만은 남매가 아니라 영혼이야. 그것만은 확실한 진리야. 이제 벤은 경찰에 넘길 거고 너희들은 오래지 못할 기억이겠지만 남은 시간동안 잘 지내길 바란다.”

말을 마치고 서호와 영우, 그리고 할아범은 벤을 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벤은 끌려가면서도 저항할 힘을 잃은 듯 했다. 방에는 대진과 지영만 남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의 눈은 슬픔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모든 일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비쳤다.



3) 나서호

방에는 서호와 영우, 그리고 봉만 있었다. 봉은 그것을 작동시키는 장치에 잘 연결되어 있었다. 다시 한 번 모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호는 영우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네. 대진, 그러니까 원본의 영우와 지영은 앞으로 길지는 않겠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지. 너도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전혀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고. 너도 원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영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처음 ‘영우’로써 눈을 떴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어요. 대진과 지영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서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봉을 달굴 장치를 작동시켰다. 이제 1분 정도만 지나면 영우의 반이 기계인 육체는 빈껍데기가 될 것이다. 영우는 순간 무엇이 생각났는지 서호에게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그 M 기업의 회장 말입니다. 완전하게 처리하지는 않았잖아요?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죠? L2 지영도 마찬가지로 아직 죽지 않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살아있어. 앞으로는 나와 같이 일할거야.”

서호의 대답에 당황한 영우는 외쳤다.

“옛? 뭐라고요? 그들은 ‘폐기물’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자들입니다. 무기 제조를 할 수 있는 자금력과 기술을 가진 회장과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L2가 뭉치면 위험합니다!”

“알아, 그것이 내가 의도한 거지. 신세계를 만들 거야. 전쟁을 일으켜서.”

서호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해댔다. 영우는 재빨리 자신의 자아를 소멸시킬 기계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자신의 다리, 기계로 바뀐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서호의 짓이라는 것을 영우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서호는 천천히 말을 했다. 영우에게 남은 시간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이.

“처음에는 난 너의 아버지, 벤을 막으려는 의도뿐이었어. 그 대진이라는 친구 있잖아? 원래 영우인 놈 말이야. 그 녀석은 바보 멍텅구리지. 하지만 친구니까 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 하지만 있지? 무슨 이유인지 벤이 선택한 영우의 육체들은 하나같이 쓸 만한 것들인 거야. 그래서 그들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회장하고 L2는 나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할 거야. 그들은 이미 내 사람들이지.”

봉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영우 자아의 종말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난 네 녀석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서호. 역시. 아버지 벤은 분명히 미친 과학자였어. 하지만 그는 기억 시술을 한 사람들을 죽일 정도로 냉정한 악마는 아니었다. 네놈은 충분히 그럴만한 놈이군.”

말을 끝낸 영우의 몸이 늘어졌다. 이젠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서호는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다. 단지 사랑 놀음이나 하는 이야기가 아닌, 나를 주인공으로 세계를 장악하는 이야기가 시작하고 있어. 으하하하”

그의 광기에 가득찬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후기

미안하다. 나의 광기가 발동했다.

결국 이 이야기를 끝내는 역할을 해서 기분은 좋은데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말을 짓는게 쉬운게 아니라서 그냥 나의 스타일로 밀어부쳤어.

그리고 앞에서 쓰인 대부분의 설정을 살리려고 했지만 사날의 '당'과 원석이의 K4, K5(아마 K4가 회장이고 K5가 유학간 영우였다는 설정이겠지만) 그리고 승기의 한자와 숫자는 안드로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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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mmaterial and Missing Power.. 19. KEY 2006/11/27 22:42

    자, 그럼 여기에 19번째 릴레이를 시작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만원권 두장을 내고 택시에서 내렸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1. 씨쯔 2006/11/25 03:26 edit rply

    오 따끈따끈...
    아래거 댓글 다니까 이게 생겨있어

    그리고 다음내용은 사람죽이지마ㅠㅠ

    • ataiger 2006/11/25 03:27 edit

      ~~^^

      난 사람 죽이는 취미 없으니까 안심해!

  2. 동글 2006/11/25 09:38 edit rply

    끝내는 것이 괜찮을 듯.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번 소설은 신기루씨한테 시작을 넘긴 관계로, 다음 소설에서는 내가 시작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어염 ㅋㅋ
    물론 그렇게 되면 다음은 탓치한테 넘겨야겠지.

  3. 동글 2006/11/25 21:59 edit rply

    배드앤딩이다 x_x

    다음 스토리가 있다면 반드시 대진과 지영이 전쟁의 난리통을 피해서 로맨스를 하는 거겠지... ㅋㅋ

  4. Krwioh Can Des 2006/11/26 09:59 edit rply

    멋지구리한 엔딩이긴 한데
    세계정복은 조금 식상한 주제 아닙니카

    • ataiger 2006/11/26 11:57 edit

      나의 꿈을 식상하다고 하다니...

  5. 악사 2006/11/26 15:19 edit rply

    그리고 원재는 ;;; 안드로메다로 ~~

  6. 사날 2006/11/26 17:27 edit rply

    아아 뭔가 머리가 복잡해서 스크롤을 내려버렸소 -ㅅ-
    저버너럼 한글로 정리해줄 의향은 없는지?

    • ataiger 2006/11/26 19:30 edit

      이 글을 내가 두 시간에 걸쳐 썼기 때문에 조금 길긴 하지만 다 읽었을 때 기운 문학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7. Nu_arbalest 2006/11/26 20:52 edit rply

    흐음. 잘 썼구나. 설정 살리려고 노력한 모습이 눈에 많이 띄는군.
    이런 엔딩도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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