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의자에 앉아 처량한 모습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기운은 A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하였다. 그것은 기운이 A의 친구라서가 아니라 다만 표면상으로 그와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해야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A와 기운이 아니면서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그와 A와의 관계가 그런 관계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기운이다.

“A, 왜 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

말을 하고 난 뒤에 역시 묻지 말걸 하고 생각했다. 기운의 질문에 얼굴을 돌리는 A는 사뭇 진지했기 때문이다. ‘진지한 건 나와 어울리지 않아.’ 기운은 생각했다.

“어……. 나 왜 사는지 모르겠어.”

“왜 살기는, 미적 숙제 하려고 살지.”

언제나처럼 기운의 소위 개그-센스-영어로 적어주자면 gag-sense-는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천재성이 사람들에게 광기로 인식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그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지금의 A와 기운의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다. A는 기운의 대답에 더욱 더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었다. 기운이 A 자신이 진지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그는 미간의 근육에 조금 더 힘을 주면서 더욱 더 진지한 모습을 만들려 노력했다. 기운은 그의 노력과 그에 이르게 된 과정-기운이 A의 진지함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역시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는 편이 더 생산적인 대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난 진지해! 내 말을 들어봐. 너는 너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니?”

“음……. 나의 위트 넘치는 말투와 준수한 외모라고나 할까?”

“닥쳐”

역시나 이번에도 기운의 개그-센스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나의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왜?”

기운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A란 녀석은 처음엔 재미없다가도 재미있어지고는 한단 말이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

기운은 생각했다. ‘개삽소리 하고 있네.’ 기운은 A가 세상에서 가장 잘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A와 똑같이 생긴 모양으로 파인 금속 틀에 들어가는 것은 세상에서 A만이 할 수 있을 것이고 A인 척 하는 분야에서도 A는 분명 전문가다. A말고는 누구도 A만큼 A인 척 할 수 없다는 건 자명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한다면 분명 또 기운의 개그-센스로 인식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기운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럼 너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거네? 세상에는 60억 인구가 있고 그 중에는 아주 잘난 사람도 있을 테니까 너는 네가 모르는 그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거 아냐.”

“음. 그러네.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다. 분명히 그런 사람도 있을 거야.”

기운은 A의 병을 치료해 줄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다시 A가 말했다.

“아마 그런 사람이 있겠지. 잘생기고, 키도 크고,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고, 친구도 많고,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사람.”

“그러면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너의 기분이 좀 나아질까, A?”

A는 깜짝 놀랐다. ‘아니, 세상 60억이나 되는 인구에 그런 사람이 한명도 없다는 것인가?’ 그런 A를 마주하며 기운은 A의 생각은 그의 얼굴에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래. 일단 가설을 세워보자. A. 네가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사람의 이름을 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무슨 필요가 있지?”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그래, 그러면 그런 사람을 Z라고 하자. 왜 이런 이름이냐 시비 걸지는 마.”

“좋아. 그럼 이제 뭘 어쩌지?”

“그냥 Z를 싫어하기만 해. 증오하라고. 마음 속 깊이에서부터.”

“뭐? 그게 뭐하는 짓이야! 난 장난할 시간 없다고.”

기운은 A의 몰지각함에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었다. 친절한 기운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전제 1. 완벽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다. 이건 네가 말한 거지. 전제 2. Z는 완벽하다. 따라서 삼단논법에 의하면 Z는 아무에게도 미움 받지 않아야 해. 하지만 지금 너는 Z를 싫어하게 되었겠지. 그러니까 결과는 잘못되었고 삼단논법의 두 전제들 중 하나는 그릇된 것이야. 이 경우 전제 1은 공리와도 같아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전제 2, 그러니까 Z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것이 부정되지. 완벽한 정리야. 그렇지 않…”



‘그렇지 않니?’로 끝을 맺으려던 기운의 논리는 A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을 나가버려 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A가 문을 험하게 닫아서 큰 소리가 났다. ‘점잖지 않기는.’

기운은 A가 나가버려 말하는 대상을 잃었지만 한마디를 추가했다.

“물론 모든 이름을 다 싫어하는 건 힘든 일이겠지, A. 그러나 너의 완벽에 대한 정의는 완벽의 부재 증명을 이끌어낸다는 건 기억해 두어라.”

기운은 생각했다. ‘만약에 A가 내 마지막 말을 들었다면 완벽한 사람이 존재할 때 남에게 미움 받는 것 따위는 그의 완벽을 부정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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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션리터 2006/12/11 12:58 edit rply

    뭐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trivial하겠지

    그리고 이건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논리와 비슷하군. 흠흠

    • ataiger 2006/12/11 14:51 edit

      과거의 철학자가 신의 부재 증명이라고 해 놓은 걸 본 적은 있는데 전제가 별로 맘에 들지 않더라고. 비슷한가?

  2. 더블XQ 2006/12/11 21:31 edit rply

    정말 완벽한 삼단 논증이네요. 악마의 사전을 보니

    전제 1: 60명이 일을 하는 것은 같은 양의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것 보다 60배 빠르다.

    전제 2: 한 사람이 기둥을 세울 구멍을 파는데 60초가 걸린다.

    결론: 그러므로 60명이 기둥을 세울 구멍을 파는데는 1초가 걸린다.



    난 이거 보고 존나 웃었는데 나만 그런가(…)

    • ataiger 2006/12/11 23:24 edit

      이건 전제에서 말한 '같은 양의 일'이라는게 결론에서 이상하게 쓰인 경우잖아... 나의 논법에도 이런 에러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삼단논법을 바르게 썼다면 결론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것 같다.

  3. nu_arbalest 2006/12/13 10:25 edit rply

    평상시의 기운의 생각이 담겨있는 듯 하군

    • ataiger 2006/12/13 12:24 edit

      물론이다. 그래서 좋지 않은 글이지.

  4. 미션리터 2006/12/13 12:19 edit rply

    생각해보면 모든 이름을 증오할 필요가 없잖아? 단지 완벽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증오하는 것만으로 이미 그 개념은 개념적 모순을 내포한다구

    • ataiger 2006/12/13 12:23 edit

      그렇기는 한데... 악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데스노트에 '악인'이라고만 써서 끝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게 재미를 위한 것 뿐이야.

  5. 동글 2006/12/15 08:08 edit rply

    “음……. 나의 위트 넘치는 말투와 준수한 외모라고나 할까?”
    “음……. 나의 위트 넘치는 말투와 준수한 외모라고나 할까?”
    “음……. 나의 위트 넘치는 말투와 준수한 외모라고나 할까?”

  6. 사날 2006/12/18 12:56 edit rply

    .......

  7. 태풍님은왠지 2006/12/18 23:02 edit rply

    물론 항상 그렇듯 글을 다 읽지 않았다(못했다)
    하지만 조금만 읽어도 뭔 뷔립한(이 의성어(?)에 대해서는 각자 해석) 소린지는 알것같아.

    난 유모씨와 김모씨와 여기 주인장씨처럼 4~5차원 세계까지 가고싶지도 않고 가지도 않아서 120%의 이해능력을 발휘할수는 없는것이 자명하지만

    이글에서 한가지는 알고있어

    이글은 조기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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